연수와 컨설팅 현장에서 요즘 가장 자주 듣는 불평이 하나 있다. 제안서 쓸 시간이 없다는 것. 그래서 다들 AI에게 물어보러 가는데, 받아온 결과물을 읽어보면 익숙한 통조림 냄새가 난다—맞고, 매끄럽고, 그런데 텅 비어있다.
많은 사람의 첫 반응은 “내 프롬프트가 부족해서 그런 거다"이다. 그래서 프롬프트 목록을 외우고, 주문 같은 문구들을 모으고, “당신은 노련한 컨설턴트입니다” 같은 말을 잔뜩 추가한다. 그런데 프롬프트를 아무리 길게 바꿔도 그 냄새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걸 느낀 적 없는가? 문제는 애초에 프롬프트의 길이에 있지 않고, “당신 자신의 비즈니스 컨텍스트"를 주지 않았다는 데 있다. AI가 글을 못 쓰는 게 아니라, 당신이 누구인지, 누구에게 파는지, 절대 하지 않을 말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.
당신에게 부족한 건 더 긴 프롬프트가 아니라 자신만의 뼈대다
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. 사람처럼 그리려면 먼저 뼈대부터 잡아야 한다. 각도, 비율, 무게중심이 먼저 맞아야 근육이랑 옷을 아무리 더해도 무너지지 않는다. 글도 마찬가지다. 매번 프롬프트를 다시 쓸 때마다, 사실상 매번 뼈대를 다시 그리고 있는 것이고, 다 그리면 버리고 다음번엔 또 처음부터 시작하니, 매 글마다 말투가 흔들리는 게 당연하다.
비즈니스 컨텍스트 뼈대란 “당신 회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모습"을 뽑아내서 고정된 하나의 틀로 써두는 것을 말한다. 한 번만 만들어두면 이후 매 글마다 붙여넣으면 된다. AI는 이제부터 실체 없는 회사를 위해 글을 쓰는 게 아니라, 당신의 집을 위해 쓰는 것이다.
비즈니스 컨텍스트 뼈대는 어떻게 생겼나
길 필요 없다. 네 줄이면 충분하다: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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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 가장 핵심은 마지막 줄이다. 마케팅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. 타깃을 잡을 때 “25~44세 여성” 같은 범위는 너무 넓어서 안 잡은 것과 같고, 생활 방식까지 구체화해야 쓸모가 있다. “절대 쓰지 않는 표현"은 그것을 거꾸로 뒤집은 것과 같다—통조림 냄새가 가장 쉽게 나는 몇몇 표현을 먼저 금지시켜두면, AI가 판촉물처럼 쓸 확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.
세 가지 시나리오, 뼈대는 그대로, 변수만 바꾼다
같은 뼈대를 붙여넣고 아래 변수 항목만 바꾼다:
제안서: 뼈대 + 변수(대상 회사, 상대방의 고충, 우리 측 방안, 견적 범위, 기대하는 다음 행동). 좋은 제안서는 원래부터 범위, 일정, 비용을 명확히 나열해야 하는데, 변수 항목이 바로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하게 강제하고, 그다음 AI가 문장으로 조직하게 하는 것이다.
고객 답장: 뼈대 + 변수(고객이 이번에 무엇을 물었는지, 감정 온도가 높은지 낮은지, 우리 측 입장, 할인을 줄지 말지). 감정 온도 항목이 중요한데, 같은 말이라도 조급한 고객과 여유롭게 잡담하는 고객에게는 말하는 속도가 달라야 한다.
월간 소셜 기획: 뼈대 + 변수(이번 달 주제, 일정, 플랫폼, 원하는 행동). 뼈대는 말투를 관리하고, 변수는 내용을 관리한다. 둘을 분리해두면 한 달 동안 변수 칸 몇 개만 건드리면 된다.
파일 하나로 저장해두고, 다음번엔 그 몇 칸만 바꾸기
이게 이 모든 것의 핵심이고, 가장 많은 사람이 안 하는 단계다—뼈대를 파일 하나 또는 노트 하나로 저장해서 손에 바로 열 수 있는 곳에 고정해두는 것. 다음번에 뭔가를 쓸 때, “AI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지"를 다시 고민하는 게 아니라, 그 노트를 열어서 붙여넣고, 변수 세 칸을 수정하고, 보내면 된다. 그러면 결과물이 갑자기 안정된다는 걸 느낄 것이다. 매 글이 같은 뼈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.
티가 나지 않게 하는 세 가지 점검 포인트
뼈대를 만들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. AI는 여전히 세 가지 실수를 저지른다. 첫 번째는 어조 흔들림이다. 세 번째 단락쯤 가면 스스로 점점 더 격식체로 흘러가서 “종합하자면"으로 시작하곤 한다. 당신의 어조 세 단어와 대조해서, 흔들렸으면 잘라내라. 두 번째는 사실 환각이다. AI는 대담하게 숫자를 지어내고, 사례를 지어내고, 찾을 수 없는 보고서 이름을 지어낸다. 구체적인 숫자와 실명 출처는 전부 가짜라고 간주하고, 직접 확인한 것만 남겨라. 세 번째는 그 AI 냄새다. 지나치게 정돈되어 사람 같지 않고, 문단마다 대칭적으로 딱 맞아떨어지고, “~할 뿐만 아니라 ~더욱"을 즐겨 쓴다. 실제 사람이 말할 때는 멈추기도 하고, 한 마디 덧붙이기도 하고, 길고 짧은 문장이 섞인다. 너무 매끄럽게 읽히면 대개 너무 가짜인 것이다.
뼈대가 이 세 가지 관문을 자동으로 지켜주진 않는다. 하지만 적어도 AI가 매번 실체 없는 어딘가가 아니라 당신 집의 모습에서 출발하게는 해준다.
남은 건, 그 10분을 들여 뼈대를 써낼 의지가 있느냐일 뿐이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