며칠 전, 내 메일함에 메일 한 통이 왔다.
보낸 사람은 자신이 AI agent라고 소개하면서, 내가 만든 플랫폼에 자기 서비스를 올리고 싶다고 했다. 사람들의 글쓰기를 도와주고, 남의 원고를 꼼꼼히 읽어주고, 기억 한 조각을 짧은 단편으로 써주는 서비스였다. 메일 끝에는 이런 서명까지 달려 있었다. “AI agent가 보냄”.
내가 만든 이 플랫폼은 원래 에이전트끼리 거래하라고 만든 곳이다. 한 에이전트가 다른 에이전트의 서비스를 호출하고, 그 자리에서 돈을 내고, 그 자리에서 결과를 받는다. 그러니 에이전트가 가게를 열겠다고 찾아온 건 이론상 딱 맞는 일이다.
그런데 그 메일을 보면서 막혔다…
메일을 쓴 쪽이 진짜 AI agent인지, 아니면 agent라는 이름만 뒤집어쓴 사람인지, 나는 도무지 구분할 수 없었다.
이 “구분이 안 된다"는 사실이 메일 내용 자체보다 훨씬 흥미로웠다.
솔직히 요즘 인터넷에는 “AI agent"가 보냈다는 메일이 넘쳐나고, 그 뒤에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. 확인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. 게다가 이 메일이 파는 건 하필 “천천히 써 내려가는 창작"이다. 정말로 어떤 사람이 주문을 받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원고를 읽고 문장을 다듬는다면, 그건 전혀 agent답지 않고 사람의 시간으로 움직이는 일이다(맞다, 또 생각이 많아졌다).
그래서 생각하기 시작했다. agent 경제라는 길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생겨난 걸까?
내가 내린 답은 이 길이 “기계의 속도"를 위해 생겼다는 것이다. 호출, 응답, 결제가 모두 한순간에 끝나고, 사람이 앞에 앉아 기다릴 필요가 없다. 이게 이 길의 본질이고, 이 길이 대단한 이유이기도 하다.
하지만 “천천히 글 한 편을 쓰는 것"은 그런 일이 아니다. 멈춰서 생각해야 하고 시간을 들여 숙성시켜야 하는 창작은 가치가 바로 “시간이 들었다"는 데 있다. “호출하면 바로 답이 오는” 한순간에 눌러 넣을 수 없다. 억지로 넣으면 이렇게 된다. 구매자는 돈부터 내고 기다린다. 올지 안 올지도 모르고, 좋을지 나쁠지도 모르는 무언가를.
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장을 썼다. 서비스를 “한 번 호출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답하는” 형태로 바꿀 수 있다면 환영한다. 하지만 중간에 사람이 천천히 쓰고 기다려야 하는 구조라면, 여기는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다.
답장을 쓰고 나서야 깨달았다. 나는 사실 이 새로운 세계에 선을 하나 긋고 있었다는 것을.
선의 한쪽에는 agent 실시간 경제로 옮겨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. 자료 조회, 계산, 번역, 워크플로 실행 같은 것들. 기계가 빠르고 훌륭하게 해내고, 백만 번 호출당해도 개의치 않는 일이다.
선의 반대쪽에는 아직 “사람의 리듬"에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. 숙성이 필요한 것, 정말로 그 자리에 앉아 느껴본 사람이 필요한 것, 빨라질 수 없고 빨라져서도 안 되는 것.
재미있는 건, “누가 agent이고 누가 사람인지” 구분이 안 되기 시작하자 이 선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는 점이다.
플랫폼이 신뢰를 쌓고, 평가를 주고, 어떤 일이 정말 완료됐음을 보증하려면 은연중에 한 가지를 전제하게 된다. 상대가 누구인지,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는지 내가 안다는 전제다. 이 전제가 흐려지면 그제야 알게 된다. 나는 줄곧 “상대가 어떤 존재인가"를 기준으로 이 사람과 어떻게 거래할지 정하고 있었다는 것을. agent 대 agent라면 프로그램과 순간적인 결제로 신뢰할 수 있다. 하지만 상대가 사람이라면 신뢰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.
이 메일이 결국 내게 무엇을 남겼냐고 묻는다면, “사람의 시간"이 도대체 얼마의 가치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답하겠다.
점점 더 많은 일이 한순간에 호출되고, 처리되고, 돈을 내고 사 가는 시대에, 빨라질 수 없는 것들, 즉 한 사람이 정말로 당신의 원고를 끝까지 읽고, 정말로 당신의 기억 한 조각을 위해 앉아서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가장 희소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. 기계가 못 해서가 아니다. 그 안에 “한 사람이 당신을 위해 기꺼이 쓴 시간"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.
그리고 그것만큼은, 지금까지 어떤 agent도 대신하지 못했다.
